<미 국무부가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 제재 및 집행 조치 주의보’ 한글 번역본. 총 23장 분량으로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대북 제재와 관련해 한글 번역본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 >
미 국무부가 우리말로 된 대북 제재 주의보를 발간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대북 제재와 관련해 한국어 번역본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상 한국을 향해 제재 위반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가 제재 위반 소지가 큰 개성공단의 재가동 필요성을 언급하자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국무부는 최근 발표한 '대북 제재 및 집행 조치 주의보'란 대북 제재 가이드북을 대북 제재 웹페이지에 게시한 것으로 1일(현지 시각) 확인됐다. 이 가이드북은 중국어·러시아어·프랑스어·스페인어로도 번역됐다. 지난 2월 해상 관련 대북 제재 주의보가 중국어로만 번역됐던 것을 감안하면 미국이 중국만큼 한국을 대북 제재의 '구멍'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가에선 미국의 이 같은 시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한국의 북한산 석탄 반입을 꼽는다. 북한산 석탄은 유엔 안보리 결의로 수입이 전면 금지된 품목이다. 하지만 외국 선적의 화물선 2척이 러시아산으로 위장한 북한산 석탄 9000여t을 작년 10월 인천·포항항에 하역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 밖에도 작년 11월 이후 또 다른 화물선 3척이 러시아에서 선적한 북한산 추정 석탄 1만5000t을 동해·포항항에 하역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한전 자회사인 남동발전은 이 중 최소 9000여t을 수입한 혐의로 관세청 조사까지 받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문제의 석탄이 북한산으로 최종 확인되면 한국 최대 공기업인 한전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은 남북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이 제재 대열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7월 하순에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이 잇따라 미국을 찾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대미(對美) 비난을 자제하던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 움직임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2일 "지금 미국은 싱가포르 조(북)·미 공동성명과는 배치되게 일방적 비핵화 요구와 '최대의 제재 압박'을 고집하면서 북남 관계의 '속도 조절'까지 운운하고 있다"며 "미국의 이런 부당한 입장과 태도가 조·미 관계 개선의 장애"라고 했다. 이어 "외세의 눈치를 보며 구태의연한 '제재 압박' 놀음에 매달린다면 북남 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며 한국에는 '제재 이탈'을 압박했다.
미 국무부는 주의보에서 "미국과 유엔은 대북 교역 및 북한 노동력 사용에 제재를 가한다"며 북한 상품 구매와 북한 노동력 사용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또 북한의 수출업자가 원산지를 속이는 경우와 북한이 시장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물건을 팔 때도 이에 말려들지 말 것을 주문했다. 실제 북한은 무연탄을 팔면서 지속적으로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았다고 적시했다. 이 밖에 북한 노동자를 쓰고 있는 중국·러시아 등 42국을 열거하고 상품 생산에 북한 노동자들이 관여돼 있는지 살펴보기를 권고했다. 또 해외 금융기관이 고의로 북한과 거래한 경우에는 "미국 내 대리 계좌를 박탈할 것"이라고 해 사실상 달러 거래에서 퇴출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미 의회는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 등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초월해 더욱 강한 대북 제재를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통일부가 지난 1일 '개성공단의 빠른 재개'를 거론한 데 대해선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미 상원 동아태 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공화) 의원은 이날 미국의소리(VOA)방송 인터뷰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미국 법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라며 "(공단을) 재개할 경우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산 석탄이 한국으로 반입된 것과 관련해서도 "(혐의가 확인되면) 제재를 위반한 모든 개인과 기업은 제재를 받아야 한다"며 "최대 압박을 완전하고 철두철미하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 업체에 대한 제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벤 카딘(민주) 상원 의원은 "남북 민간 교류도 대북 제재를 준수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하고, 개성공단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 의회의 이런 태도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여전히 개발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 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고 확인했고, 최근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에서 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플로리다주(州) 탬파에서 열린 정치 유세에서 "김정은과 관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북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고 했지만, 미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테드 크루즈(공화) 상원 의원은 이날 "미국은 북한의 공격적 행동에 맞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미 상원을 통과한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서도 '북핵 협상의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런 분위기는 유엔에서도 드러난다.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안보리 8월 전망 보고서'는 "현재 안보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지난달 미국이 강조한 대북 제재 이행"이라고 했다. |